메밀꽃 필무렵 운수좋은날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
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
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
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
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번이나 흐붓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 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
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
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
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
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
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
렇다곤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낚었나 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었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
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
낸 적도 없었으나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줏집 문
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
가 나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
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
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
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
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
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 다 지껄였다 ― 어디서 주워 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
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
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
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
이 섬찟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도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세울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쫑긋하
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
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할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 편에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
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 없
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
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러운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는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 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
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까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
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이 흘렀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
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 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배인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라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고 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왼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앵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려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새를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 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
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
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이를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 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헤매이
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
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
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웠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
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
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
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끊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이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
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
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 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
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 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
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
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
나 허생원은 시침을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
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
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
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멋에 적적
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
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
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 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
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 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
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
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었나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
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
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나 처녀의 꼴은 꿩 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
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나지  그러나 늘그막바지까지 장돌뱅이
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애와두 하직하려
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철 뚜
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섧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깨나 어
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애비 에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
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
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 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
리기도 대견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 
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
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
탕 쪽 씻어 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 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매
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
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 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
서 의부라고 전망나니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할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곤 하니 집 꼴이 무
어겠소 열여덟 살 때 집을 뛰쳐나와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심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 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
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
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인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비적거
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각 중인데
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렷다
동이의 탐탁한 등허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
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오 생원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 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
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딴은 대단한 나귀 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
운 물을 끓여 주고 내일 대화 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
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
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
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 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
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하여 행여나 손님이 있
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
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장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통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
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
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커녕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
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 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첨지의 말에 
의하면 오라질년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남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
하고 불길은 닿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은 고만두
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 하고 눈을 홉뜨
고 지랄을 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
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
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 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 
세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
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
덜미를 기름주머니가 다 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
이 그 학교 학생인 줄 김첨지는 한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
짜고짜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이로 동기 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하려 함이로다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
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다
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꾸라 양복일망정 노박이
로 비를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으랴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곳을 
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월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다 애걸하는 빛을 띄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며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래도 김첨지
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올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
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
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
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안으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
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
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잇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또 이런 
진날에는 좀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언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다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다른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
하는 듯이 자기를 노려보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 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
도 들은 듯싶다 딸국딸국 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싶다
왜 이러우 기차 놓치겠구먼
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려왔다 언뜻 깨달
으니 김첨지는 인력거 채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
하고 김첨지는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집이 차차 멀어갈수록 김첨지의 걸음
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겨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말마따나 십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요
라고 깎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 밖이었다 노동
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
인 줄 절실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
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
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
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
는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살이 무서워 정거장 앞에 섰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
다 얼마만에 기차는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손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
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던 김첨지의 눈에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요
그 여학생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때깔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
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구경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
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
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의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제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찮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 하고 물러섰다
전차가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
나 그의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
작하였을 제 타고 남은 손 하나가 있었다 굉장하게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안에 짐이 크다 하여 차장에게 밀려 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대어 섰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한동안 값으로 실랑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
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인력
거가 가벼워져서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는데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이젠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만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
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진 땅에 
어찌 가노 하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한 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창경원 앞
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는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올수록 그의 마음은 괴상하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누
그러짐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이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이 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
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진 얼굴은 주홍이 오른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이고 노
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수염도 있대야 턱밑에
만 마치 솔잎 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네 문 안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
을테니 한 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는 말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
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
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재미가 좋아 보이
하고 김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재미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왼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
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빠지짓 빠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 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은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
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
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
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첫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리 곱빼기 두 
잔이 더 왔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
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빼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개를 숭덩
숭덩 썰어서 볼을 볼록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 괜찮
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놈 왜 술을 붓지 않아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이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
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척훔척하더니 일 원짜리 한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
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
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
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이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팔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
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곱빼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이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리
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우고정거장에
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 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
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나님이신지 여학생이신지 
요새야 어디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를 타시랍시요 하고 손가방을 
받으랴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핵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
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굴어 어
이구 소리가 체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런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
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예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에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아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년이 밥을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들었었는데
하고 치삼이도 어떤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빼기를 한 잔
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간을 빌
어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
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
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
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거리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소리는 빨 따름이
요 꿀떡꿀떡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
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
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
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내 빨지 않은 지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
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섞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
지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
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 오라질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
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어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
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
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
으응 이것 봐 아무말이 없네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루 보지 못하고 천정만 바라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
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
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쪼이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 뒤에서 푸드덕 푸드덕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꼭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덕 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덕 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어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난다 대뜸 지게막대기를 메고 달겨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 먹고 헛매질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 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척만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구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디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는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주변을
할끔할끔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손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 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너 얼른 시집을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세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지게 후려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 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리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 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그 담날 저녁 나절이었다 
나무를 한짐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닭이 죽는 소리를 친다
이거 뉘 집에서 닭을 잡나 하고 점순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래졌다 점순이가 저희 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아 이게 치마 앞에다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닭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그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번 휘돌아보고야 그제서 점순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참지게막대기를 들어 울타리의 중턱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닭 알 못 낳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뻑 질렀다
그러나 점순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닭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산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닭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너 보란 듯이 내 앞에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집에 튀어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닭이 맞을 적마다
지게막대기로 울타리를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 하면 울타리를 치면 칠수록 울섶이 물러앉으며 뼈대만남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아 이년아 남의 닭 아주 죽일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 그제서야 울타리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닭을 내팽개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울타리께를 힝하게 돌아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랐다가고 하는 것은 암탉이 풍기는 서슬에 나의 이마빼기에다 
물찌똥을 찍 갈겼는데 그걸 본다면 알집만 터졌을 뿐 아니라 
골병은 단단히 든 듯싶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뭐 울 아버지가 그래 고자야
할양으로 열벙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 때까지 울타리
위로 나와 있어야 할 점순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 하는 걸 생각하니 돌보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치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점순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수탉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집 수탉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회를 치는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수탉의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수탉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모이를 쥐고 와서 꾀어 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장독께로 갔다
쌈닭에게 고추장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장독에서 고추장 한 접시를 떠서 닭 주둥아리께로 
들이밀고 먹여 보았다 닭도 고추장에 맛을 들였는지 거스르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세는 용을 못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홰 속에다
가두어 두었다 밭에 두엄을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닭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점순이만 저희 울 안에서 헌 옷을
뜯는지 혹은 솜을 터는지 옹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으로 가서 닭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닭은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다
멋지게 쪼는 바람에 우리 닭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날갯죽지만
푸드덕 푸드덕 하고 올라뛰고 뛰고 할 뿐으로 제법 한 번 쪼아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 번은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발톱으로 눈을
하비고 내려오며 면두를 쪼았다 큰닭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수탉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면두를 쪼니 그제서는 감때사나운 그 대강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옳다 알았다 고추장만 먹이면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 때에는 뜻밖에 내가 닭쌈을 붙여 놓는 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점순이도 입맛이 쓴지 살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 한다 잘 한다 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뻗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닭이 한 번 쪼인 앙갚으리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끔 못 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고추장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난다 장독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 밑에 고추장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먹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닭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리었다 그리고 고추장 물을 타서 그
구멍으로 조금씩 들이부었다 닭은 좀 괴로운지 킥킥 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두어 종지 가량 고추장 물을 먹이고 나서는 
나는 고만 풀이 죽었다 싱싱하던 닭이 왜 그런지 고개를 살며시 뒤틀고는
손아귀에서 뻐드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볼까 봐서 얼른 홰에다 
감추어 두었더니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정신이 든 모양 같다
그랬던 걸 이렇게 오다 보니까 또 쌈을 붙여 놓으니 이 망한 계집애가
필연 우리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제가 들어와 홰에서 꺼내 가지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다시 닭을 잡아다 가두고 염려는 스러우나 
그렇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소나무 삭적이를 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암만 해도 고년의 목쟁이를
돌려 놓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망할 년 등줄기를 한번 되게 후려치겠다
하고 싱둥겅둥 나무를 지고는 부리나케 내려왔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여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앞에서 또 푸드덕 푸드덕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
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 놓고 저는 그 앞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막대기를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닭도 닭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 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겨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 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뉘 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다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턴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 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