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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타짜

· 3년 전 · 1381 · 12

시골 어머니 댁에서 설을 쇠고 집에 와서 간만에 두 아들과 집에 있어도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아내가 윷놀이라도 하자는데 아이들이 내켜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포커를 하자고 해서 카드를 찾으니 없고, 화투 한 모만보입니다.

 

하는 수 없이 섯다로 종목을 정해서 아내를 동참시킵니다. 고스톱도 못 치는 아내에게 1월 송학부터 10월 단풍 한 번 알려주고 곧바로 실전 투입, 바둑알 하나 당 500원으로 칩을 만들어 판을 돌립니다.

 

화투 세 장을 받고 하나를 버려 게임을 하다 보니 꽤나 끗발이 좋습니다. 도박에는 재능이 없어 번번이 잃기만 하지만, 아주 오래 전 출가한 후배가 있는 부산 모 사찰의 스님들 돈을 화엄사 죽비로 평정해서 제1회 OO지존의 자리에 오른 영광이 있기는 합니다.( 당시 스님들의 고스톱 은어 : 화엄사 죽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겁나 강하다는 것이죠.

 

세 장으로 패를 맞추다 보니 영화처럼 2땡, 4땡, 장땡이 한 판에서 나오고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웃음소리가 커집니다.  제가 계속 따니까 작은 아들 놈이 화투 검사까지 합니다. 저도  한 번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1,8 아홉끗인데 두 아들이 서로 판을 키워서 올인 직전까지 갔습니다. 

작은 아들이 1땡으로 죽고 큰 아들은 5땡, 저는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8 십끗짜리를 보이며 8땡, 했더니 뒷장은 확인도 않고 씩씩거리며 담배 피우러 나갑니다. ㅋㅋ. 손은 눈보다 빠르고, 도박판에 부모 자식도 없습니다.

 

 

밤 아홉시에 시작한 게임이 12시 시한을 정해 놓고서야 끝납니다. 아내는 10만원 잃었다 하고 큰 아들은 몇 천 원 땄다하고, 작은 아들은 3만원 잃었다 해서 돌려 주고  개평으로 만원을 얹어 주었습니다. 아내에게도 돈을 돌려 주고 지갑을 확인해 보니 오히려 제 돈이 많이 부족합니다.  세상에 믿을 놈 없습니다.

 

돈을 따고도 지갑이 비어도 오히려 행복합니다. 세 시간 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웃은 것을 생각하면 몇 천만원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아이 어렸을 때 바둑을 두면서도 봐주지 않아 울린 적이 많습니다. 블루마블 놀이 하면서도 수준은 아이들과같아 졌습니다.

 

이제는 지는 법, 져 주는 법을 배워 볼까 합니다.

큰 아이는 교원임용고시 시험을 봤어야 했는데 학점이 부족해 아직도 졸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봉사 점수가 부족하다고 하더니, 엄마한테는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저는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게 이야기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는 눈치더라구요. 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완벽하게 보여주려 연기를 한 제 잘못이죠.

 

영화 타짜에서처럼 38광땡을 들고도 가족들 앞에서는 죽을 줄 아는 관대한 사람이 되어 보려 합니다. 

아이들보다는 인생타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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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개

베스트 댓글

@쪼각조각 아닙니다. 너무 엄하게 키운 탓에 거리가 느껴져서 변화를 모색 중입니다. 다행히 작은 아들은 군입대하면서 깊은 속마음과 사랑을 여러번 편지에 담아 표현했더니 많이 이해 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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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관대하고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쪼각조각 아닙니다. 너무 엄하게 키운 탓에 거리가 느껴져서 변화를 모색 중입니다. 다행히 작은 아들은 군입대하면서 깊은 속마음과 사랑을 여러번 편지에 담아 표현했더니 많이 이해 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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